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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류환
잠파노

방명록

 

황재오/ 단문 1-14
 2013. 7. 30. 01:35

1. 황재오의 별명은 야차였다. 피를 보면 눈깔이 뒤집혔다. 할 줄 아는 게 쌈박질밖에 없는 것처럼 주먹을 휘두르고 다녔다. 황재오가 신고 다니는 컨버스는 처음 샀을 땐 아이보리색이었지만 지금은 진흙과 피가 엉겨서 본래 색을 알아볼 수 없었다. 운동화를 새 것으로 바꾸어도 마찬가지였다. 황재오는 싸우는 게 삶의 낙인 듯 굴었다. 스스로를 파괴하지 못 해 안달이었고, 손등과 눈썹뼈, 볼에는 언제나 반창고가 붙어있었다. 대부분은 류환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었다. 황재오는 상처를 치료하지 않았다. 황재오는 제 상처를 원류환이 가만 두고 보지 못 한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 점을 확실히 이용했으며, 또한 즐겼다.


2. 황재오는 창녀의 아들이었다. 황재오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사실이 황재오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지배하고 영향을 끼쳤음은 거의 확실해 보였다. 황재오는 여자를 싫어했다. 거의 혐오증에 가까웠다. 여자의 몸을 보면 성적흥분보다는 구역감을 먼저 느꼈다. 그럼에도 황재오는 가슴이 큰 여자애들과 술을 마시고 입을 맞추고 종종 몸을 섞었다. 황재오는 가슴을 비롯한 젖꼭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모유라도 원하는 것처럼 쪽쪽 빨았다. 그건 류환과 섹스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젖이 나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안 나온다니까..) 애타게 빨고 깨물고 혀로 궁글렸다. (나올 때까지 빨아줄게.) 손으로 마른 가슴을 애써 쥐어짜기도 했다. 류환은 다음날이면 유두가 셔츠에 스칠 때마다 쓰라려했다. 아프냐? 황재오가 그렇게 물으면 류환은 입술을 깨문 채로 황재오를 쳐다봤다. 황재오는 류환의 얼굴에 서려있는 불만과 짜증과 투정을 좋아했다. 너 그 표정 존나 귀여워. 그리고 교실이라 키스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애석해했다.


3. 이해랑은 전학생이었다. 제법 날라리같은 티가 나는데도 진하게 잘생긴 얼굴과 후리후리한 몸매 때문에 전학 첫날부터 여자애들한테 인기가 좋았다. 황재오는 이해랑을 알지 못 했다. 황재오는 아침에는 늘 잠을 잤다. 아침만이 아니라 수업 시간 내내 잠잤다. 짝꿍인 류환이 나중에 필기를 보여주면 대충 베끼다가 그것도 귀찮아 관두는 게 다반사였다. 황재오가 학교에 관해 관심있어 하는 건 오로지 원류환 하나였고 같은 반에서 이름을 외운 사람 역시 오로지 원류환 하나였다. 그런 황재오가 이해랑의 존재를 깨달은 건 아주 사소한 계기에서였다. 이해랑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는 원류환을 보았다. 멋쩍고 수줍게 웃는 류환을 내려다보는 이해랑의 표정. 황재오의 본능은 이해랑이 자신과 동류라고 말하고 있었다. 황재오는 손으로 목덜미를 느리게 쓸어내리며 웃었다.


4. 이해랑은 고아였다. 이해랑은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집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고아라고 표현했다.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것처럼 퍽 가볍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본인이 스스로 그렇게 여겨지길 원하는 것 같았다. 류환은 대답이 아니라 경청을 택했다. 이해랑은 그런 류환이 마음에 들었다. 이해랑은 류환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고등학생이 혼자 사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었다. 공간을 채울 만한 가구가 없어서 휑하기까지 했다. 류환은 찬 공기가 감도는 거실과 해랑의 방을 거닐면서 해랑이 느끼고 있을 외로움 따위를 가늠했다. 해랑은 언제나 웃었고 장난스러웠으며 모든 걸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했다.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느껴졌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겠다. 류환의 말에 해랑은 얄궂게 대답했다. 그럼, 재밌는 거 할래? 재밌는 거? 해랑은 얇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다가, 불쑥 류환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댔다. 류환은 놀라지 않았다. 해랑은 장난감을 발견한 일곱살 짜리 남자아이처럼 류환의 눈동자를 살폈고 시선을 내려 입술을 훑었다. 색이 예뻤다. 류환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처음부터 골려줄 의도였던 해랑은 류환이 덤덤하게 굴자 김이 샜다. 흠. 재미없네. 얼굴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나서 해랑이 물었다. 너 황재오랑 친하냐? 류환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응. 해랑은 류환의 이런 반응을 알 것도 같았다.


5. 황재오는 분명 류환과 같이 하교를 하는데도 아침이면 얼굴에 생채기를 달고 왔다. 그 덕에 류환의 필통 안에는 언제나 연고가 들어 있었다. 너 어제 또 싸웠지. 류환이 황재오의 얼굴에 연고를 발라줄 때마다 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습관치고는 매번 속상함이 새침하게 묻어있어 재오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쪽에 가까웠다. 조금만 더 나를 걱정해봐. 어쩌면 그게 황재오의 속내일지도 몰랐다. 나른하게 책상에 옆으로 엎어져 있으면 류환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처 위에 연고를 덧발랐다. 황재오는 그 손길에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디서 났는지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반창고가 붙어있기도 했다. 씨발 이런 거 붙이지 말라니까. 황재오는 걸게 욕을 했지만 스스로 떼는 일은 거의 없었다.


6. 황재오는 얼굴에 무언가를 묻히고 있는 류환을 좋아했다. 아니.. 무언가로 얼굴을 적신 류환을 좋아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물을 줄줄 흘리거나 눈두덩에 뿌려진 정액 때문에 눈을 못 뜨는 원류환. 황재오는 류환과 액체의 조합은 환상이라고 생각했다. 류환은 종종 너무 느껴서 흐느끼곤 했다. 속눈썹이 축축하게 젖어 갈래갈래 뭉쳐 있는 걸 혀로 핥으면서 박아올리면 재 오야 제바알 아아 아 응 그 앗 흐..그만 하며 목을 끌어안는 게 기본 패턴이었다. 입으로는 그만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데 하는 짓은 더 해달라고 기름을 붓는다. 평소엔 담백하게 생겨선 뒤로 자신를 받을 때면 자라면서 수없이 봐온 창녀들보다 더 색스러웠다. 류환은 정액을 마실 줄도 알았다(재오는 이 점이 의문스러웠다.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안에 싸는 대신 얼굴에 뿌릴 때면 류환은 시키지 않아도 입을 아 벌렸다. 붉은 혀가 입 안에서 정액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게 알 수 없이 아니꼬워 눈꺼풀 위로 뿌리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류환이 팍 튀는 정액에 눈을 꾹 감으면 눈두덩과 콧대 사이로 정액이 고였다. 류환은 그걸 손가락으로 닦아서 스스로 핥았다. 황재오는 뿌리가 묘연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런 날 다음이면 괜히 흰 우유를 사다주곤 했다.


7. 류환이 자습시간에 곤히 잠들었던 때가 있었다. 재오는 선이 고운 류환의 얼굴을 찬찬히 훑다가, 류환의 필통에서 연고를 꺼냈다. 상처 하나 없이 고운 피부 위로 연고를 덕지덕지 발랐다. 눈꺼풀과 콧잔등과 볼에. 연고가 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모양새가 많이 익숙했다. 황재오는 혼자서 실실 웃었다. 류환은 자고 일어나서 끈적거리는 얼굴을 만지며 재오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황재오의 대답은 간단했다. 왜, 좆물 바른 것 같아서 꼴리는데. 


8. 황재오의 폭력성과 파괴욕구는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잠잠하다고 생각한 게 무색할 만큼 황재오는 밤마다 굶주린 짐승처럼 나돌아다녔다. 류환은 그걸 알았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황재오는 제 엄마가 보지 팔아 번 돈을 모조리 합의금으로 날렸다. 어떻게 때렸는지는 몰라도 맞은 애가 나흘 동안 혼수상태였다고 했다. 황재오는 주먹이 묵직하니까 아마 광대가 부서질 때까지 얼굴을 갈겼을지도 몰랐다. 정작 황재오는 멀쩡했다. 얼굴이 피멍으로 가득했고 등이나 어깨에 긁힌 자국이 가득했지만 몸을 운신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저를 보고 아연한 표정을 짓는 류환에게 오빠 안 뒈지니까 울지 마라. 느끼한 농을 칠 정도로 아주 멀쩡했다. 황재오는 그 길로 학생부로 갔다. 황재오 앞으로 떨어진 건 일주일간의 정학 처분이었다.


9. 황재오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일주일 동안 류환의 옆자리는 이해랑의 차지였다. 이해랑은 류환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적었다. 모두 황재오 때문이었다. 황재오는 류환의 옆에서 한 마리 이리처럼 해랑을 견제했다. 해랑이 지켜본 결과 류환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익숙한 성정이었다. 황재오에게 아낌없이 쏟아주었고 해랑이 틈날 때마다 보이는 관심을 익숙하게 받아주었다. 오히려 그게 황재오를 더 불안케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류환도 그걸 알았다. 해랑은 황재오가 없으니 거리낌 없이 류환에게 들이댔다. 이해랑은 원래 거침이 없었다. 단지 원류환 뒤에서 이를 사납게 드러낸 짐승과 부딪치고 싶지 않아 그동안 참아왔을 뿐이었다. 이해랑은 류환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 차분한 분위기와 고양이 같은 눈매가 마음에 들었고, 그 뒤로는 황재오 같이 사회성 없어보이는 짐승을 잘 다루는 것과 그 짐승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류환 주위로 오는 관심을 모두 차단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으며, 코 앞까지 다가온 제 얼굴에도 당황하지 않고 고요하게 자신을 쳐다보던 류환의 눈동자에 결국 반했다. 형용 못할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해랑은 류환에게 이것저것을 제의했다. 대부분은 놀러가자는 거였다. 야자 째고 영화 보러 가자. 저녁시간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류환은 한 번씩 거절했지만 류환의 거절은 상대방에게 '더 하면 될 것도 같다'라는 여지를 주는 쪽이었다. 해랑이 몇 번 더 채근하면 류환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꼭 황재오의 이름을 들먹였다. 주로 재오가 알면 안 될 텐데.. 같은 류였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너네 집 갔던 거 재오가 알고나서 나 그 날 완전 고생했어. (몸으로. 그러나 류환은 뒷말을 삼켰다.) 해랑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0. 황재오가 애인이라도 되냐? 맨날 황재오, 황재오. 해랑이 짜증스레 말했을 때 류환은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고1 때 여자친구 만든 적이 있었거든. 그 때 재오가 손목을 그었어. 해랑은 허, 실소를 내뱉었다. 지독한 놈이네.


11. 상처투성인 황재오의 몸. 착색된 멍이나 살이 찢어졌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흉터들이 즐비했다. 그러나 황재오는 자해만큼은 하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황재오는 죽겠다고 손목에 칼 긋는 것들을 비웃곤 했다. 씨발 뒤질라면 옥상에서 뛰어내리든가. 그거 가지구 속 시원하게 뒈지겠냐. 그런 논리였다. 하지만 황재오는 손목을 그었다. 황재오답게 커터칼처럼 시시한 게 아니라 식칼로. 원류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으루 와. 숨이 뜨문뜨문 거칠었다. 류환은 안개처럼 희뿌연 불안감을 느꼈고 황재오의 집으로 뛰어갔다. 도어락을 풀고 황재오의 방문을 열었을 때 손목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피를 뚝뚝 흘리는 황재오가 보였다. 류환아. 황재오가 원류환을 이름으로만 부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류환은 피 웅덩이와 자상이 깊은 손목을 거쳐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고 있는 황재오의 얼굴을 보았다. 너.. 대체.. 류환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려 주머니를 뒤지자 황재오가 멀쩡한 손을 들어 제 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황재오는 황망한 류환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류환아.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 년 예쁘더라.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좋아? 류환은 황재오가 오로지 저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런 짓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류환은 두려워서 울었다. 황재오가 아니라, 황재오가 이대로 죽을까봐. 그게 두려워서.


12. 류환은 종종 황재오의 왼쪽 손목에 나 있는 흉터를 매만졌다. 검지로 부드럽게 쓸고 있노라면 황재오는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그런 류환을 빤히 쳐다보았다. 제 앞에 알짱대는 소동물을 바라보는 호랑이처럼. 너 뭐하냐. 황재오가 그렇게 물으면 류환은 "아팠지. 이거." 나긋하게 말했고, 황재오는 "떡치고 싶으면 말로 해." 라고 대답했다.


13. 첫 섹스는 황재오의 집 거실에서 이루어졌다. 황재오는 제 것에 콘돔을 씌우면서 말했다(황재오네 집에는 성인용품이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있었다). 너 그거 알아? 우리 엄마는 나만한 애새끼들이랑도 뒹굴어. 조소가 섞인 말투였다. 류환은 대답하지 않았다. 몸이 잔뜩 달떠있었다. 비좁은 구멍 안으로 황재오의 것이 들어왔다. 황재오는 류환의 내벽이 제 자지 모양에 맞춰지는 기분을 느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만족감이 허리 아래부터 열기처럼 몰려왔다. 황재오는 거칠게 허리를 놀렸고 류환은 갈무리 하지 못 한 신음을 간헐적으로 내뱉었다. 황재오의 어깨 너머로 어머니로 생각되는 여자의 사진이 보였다. 류환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러나 쾌감이 먼저였다. 류환은 눈을 감고 황재오가 주는 황홀함에 몸을 내맡겼다.  

섹스가 끝나고나자 남는 건 꿈처럼 단편적인 잔상들이었다. 몸의 열기는 그대로였다. 황재오는 사정하지 않은 류환의 좆을 손으로 몇 번 쓸어내렸다. 창녀 아들 좆빠는 솜씨 볼래? 그리고 제 입에 삼켰다. 류환은 펠라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황재오가 좆을 잘 빠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뜨겁고, 자극적이고, 노골적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류환은 황재오의 머리칼을 붙든 채 그 입 안에 사정했다. 황재오는 정액을 입에 머금은 상태 그대로 류환에게 키스했다. 침을 타고 제 정액이 밀려왔다. 역한 냄새가 풍겼다. 류환은 황재오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지만 애초에 밀려날 상대가 아니었다. 류환이 꾸역꾸역 입 안으로 넘어온 모든 걸 삼키고 난 뒤에야 황재오의 입술이 떨어졌다. 황재오는 씨익 웃는 게 다였다. 맛있지. 그렇게 덧붙이면서.


14. 류환은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 따위의 기념일을 아주 소소하게 챙겼다. 황재오에게 초콜릿을 주고 황재오에게 사탕 하나를 주고. 그게 다였다. 황재오는 제게 abc초콜릿 하나를 건네는 류환에게 이딴 건 기지배들이 주는 거라면서 어이없어했다. 그래도 받기는 했다. 그건 나중에 도로 류환의 입으로 들어갔다. 황재오는 달달한 걸 안 좋아했다. 사탕도 마찬가지였다. 류환은 다 알면서도 오렌지맛 사탕을 황재오에게 주었다. 그 날 밤에 황재오는 류환이 준 사탕을 입에 까 넣고 몇번 굴리더니 그대로 류환에게 입으로 넘겨주었다. 류환은 머릿속으로 익숙한 드라마 장면 따위를 떠올렸지만 황재오가 딱히 드라마를 볼 위인은 아니었다. 그 시간에 주먹질을 하러 나간다면 모를까. 어쨌든 오렌지 향이 입 안에 퍼졌고, 황재오의 좆이 몸 안으로 느리게 들어왔다. 아아. 류환은 몸을 떨었다.